요셉을 통해 조명한 성 빈센트의 삶과 영성
창세기 후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기를 이룬 사건이다(37-50장). 무엇보다 성서저자는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또 다른 유형의 ‘하느님의 사람’을 묘사한다. 이러한 요셉의 삶은 16세기 유럽의 암흑기에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살았던 성 빈센트의 신앙여정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하느님 현존의 삶’ 그리고 ‘인간 안에 계신 하느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요셉과 성 빈센트의 신앙여정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고 돌보시는지 또한 두 인물이 그들의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알아 뵙고 구원사업에 협력하였던 ‘신앙적 자세’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 안에서 성서저자는 하느님께서 가련한 처지의 요셉을 돌보아 주시고 그의 앞길을 열어 주셨다고 보도한다. 무엇보다 그의 삶 전체에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이란 매사에 하느님께서 돌보시고 보호해 주심에 대한 신뢰로써 ‘하느님 섭리’라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꿈을 통해서 그들의 운명이 알려진다고 여겼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석한 것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행한 일임을 전 존재로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의 사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삶에 일어난 많은 시련의 여정들은 성 빈센트의 생애와 상응한 점들이 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형들의 질투를 받아 이집트까지 노예로 팔려온다. 그곳에서 포티파르 부인의 유혹으로 감옥에 갇힌다. 성 빈센트는 역시 셋째 아들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집안의 황소를 팔아서까지 신학교에 입학한다. 사제생활 중에 도둑의 누명을 쓰며, 신앙의 위기를 받고, 또 한때는 노예로 팔려 튀니지로 간다. 그러나 요셉과 성 빈센트에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들은 그들을 구원의 도구로 쓰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다.
성 빈센트의 경우 그리스도께로 향한 온전한 투신의 삶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회심의 과정과 그로인한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계획들의 철저한 포기를 통해 서서히 하느님을 향한 변화를 체험한다. 그 체험들 안에서 그는 모든 일에는 하느님 은총의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믿음은 그로 하여금 희망 속에 하느님의 협력자로 살기를 요청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했기에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과도하게 앞서 나가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매순간의 사건들을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응답한다. 그래서 그의 영적 삶에서 하느님의 섭리는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요셉에게 일어난 그 모든 사건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 섭리였다면, 성 빈센트에게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은 그의 삶을 신앙적으로 성숙시키고 그 시대의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었다. 그들의 수많은 고생과 시련들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은 두 사람은 하느님 섭리에 큰 신뢰와 사랑을 둔다.
하느님 현존 안에 삶
요셉과 성 빈센트의 삶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두 번째 공통점은, ‘하느님 현존 안에 삶’이다. 창세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창세 39, 2). 여기서 ‘주님께서 함께 계심’ 과 ‘모든 것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된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요셉의 삶 속에서 ‘그 어떤 사람’이란 그의 삶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과 그분의 가치’를 그의 삶의 첫 자리로 모시는 사람으로 ‘하느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할 때 하느님은 그의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시며, 그로 인한 사람들에게 까지 복을 내리신다(창세 39, 5).
요셉에게 하느님의 모습은 특히 ‘하느님의 찾아오심’이란 말로 표현된다. 즉 하느님은 그의 모든 삶의 어려운 순간에 찾아오시어 도와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찾아오심’에 대한 믿음은 요셉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식들에게 축복을 주며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갈 것입니다.”(창세 50, 24).
여기서 ‘하느님의 찾아오심’은 ‘하느님의 현존’이라 말할 수 있다. 즉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그 사람 안에 거처를 마련하여 함께 하는 삶이 바로 ‘현존’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라고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또한 성 빈센트가 그의 삶 속에서 늘 말했던 ‘하느님 현존속의 거닐음’(생활규범 202.1; SV IX, 319)과 맥을 같이한다.
성 빈센트에게 있어서 하느님 역시 인간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 함께 사시는 분’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인간을 직접 찾아 나서시고, 그 인간 안에 같이 현존하는 분이다(마태 25,31; SV X, 332). 특히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인격 안에 살아계시며 고통당한다고 여긴다(SV X, 680). 그래서 그는 가난한 이들을 ‘우리의 주님들’, ‘스승들’이라 말한다(SV IX, 119). 이러한 그의 영성은 언제나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인 기도에서 ‘인간을 찾아 나섬’ 인 활동으로 이어지고 서로 맞물린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하느님의 현존 속의 거닐음’이란 삶의 매순간에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그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기도와 일 안에서, 기도와 일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짧은 반성의 순간에 조차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 삶의 지속적인 연장은 그의 삶을 온통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만든다. 즉 하느님이 그를 찾아와 그와 함께 하며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준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많은 하느님 애덕사업을 행할 수가 있었다.
‘하느님의 현존속의 거닐음’은 오늘날 세상 안에서 많은 활동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다. 왜냐하면 많은 활동 속에서 소진될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케 하여 매순간 ‘하느님의 사람’으로 존재케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 안에 계신 하느님께 봉사
요셉과 성 빈센트의 삶에서 크게 다가온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인간을 찾아온 하느님’을 일생에 거쳐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았다는 점이다. 요셉의 경우 하느님은 가련한 처지의 요셉을 불쌍히 여겨 노예로 이집트까지 팔려간 요셉을 찾아온다. 이 하느님은 일차적으로 ‘요셉’ 안에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요셉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마침내 ‘이집트에 살고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와 그들과 함께 살며 돌보아 주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간다. 요셉은 자신과 동족들 안에 함께 하는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의 일에 협조한다. 그 안에서 그의 섬김과 봉사는 미움을 사랑으로, 분노를 온유로 바꾼다. 여기에 요셉의 하느님 사람으로서의 인격과 인품이 드러난다.
성 빈센트 역시 그의 삶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을 사랑하여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며 그 하느님께 대한 섬김과 봉사의 삶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 신비에 대한 그의 영적체험 안에서 더욱더 심화된다. 이 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하여 움직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의식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 그의 ‘신앙적 자아 정체성’을 확고하게 한다.
이처럼 요셉과 성 빈센트의 영적 삶에는 서로 상통하는 점들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며, ‘하느님 현존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요셉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굶주림에서 구원하였듯이, 성 빈센트 역시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와 그들 안에 살며 그들을 돌보는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며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살았다. 이로써 ‘주님께서 함께 계셨으므로,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들이 되었다.’라는 말씀의 주인공들이 되었다(창세 39,2). 또한 파라오가 요셉에게 한 “이 사람처럼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또 찾을 수 있겠소.”(창세 41,38)는 그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그들의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았다. 요셉은 예수의 여러 예형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서적 덕성의 탁월한 모범’이다. 하느님께 대한 그의 불굴의 신앙, 모든 시련 앞에 정직함, 모욕의 용서, 악을 선으로 갚는 아량은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덕목들이다. 성 빈센트 역시 그가 지닌 침묵과 겸손, 기도와 선행으로 일관된 영적 삶, 특히 그리스도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성덕과 사랑’으로 이끈다. 그들의 신앙 여정은 혼탁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 비참함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지닌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사랑’과 인간을 통한 ‘하느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며, 자신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완성한다.
무엇보다 요셉과 성 빈센트는 겸손한 사람들이다. 입신출세의 문턱에 들어서 있으면서도(요셉은 이집트의 재상/ 성 빈센트는 궁정의 고문관) 자신의 지혜와 슬기를 하느님이 은총에 돌리는 그들의 겸손한 자세와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들의 깨끗하고 정직한 삶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또한 하느님과의 사귐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 일상에 대한 하느님 현존의 삶, 그리고 인간들 안에 계신 하느님께 대한 봉사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녔던 덕행과 신앙적 삶의 자세는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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