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성녀와 모성성 마리아 아나빔
“여러분의 어머니는 참으로 깊은 영성의 삶을 사셨습니다.
-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 생활규범 105조에서 -
들어가면서
루이제 드 마리약(1591-1660)은 한 사람의 여성이고, 한 남편의 아내였으며, 한 아들의 어머니요, 선생님이자 간호사이며, 사회사업가, 수도회의 설립자였다. 한 사람의 수도자로서 성덕의 완성을 이룬 성녀이다. 그녀는 뛰어난 조직가(150cm 체구에 지휘관의 머리를 가진 여성)로 열정적이고 강렬한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심이 깊은 여인, 삶에서 추구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것이었다. 그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것을 사랑할 줄 알았다. 고난과 사랑을 통해 그녀는 행동하는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시대적 배경
그녀가 살았던 17세기 프랑스는 교회가 사회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응답함으로써 교회 사도직의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영적 풍요를 가져온 시기(영적 빛의 시기)로 여성들이 교회의 사도직과 영적쇄신에 기여한 시기이다. 프랑스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에 대응한 가톨릭교회의 명료화와 교회쇄신을 주도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정신을 수용하면서, 베륄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영성학파들이 교회의 신앙쇄신과 사제양성을 위한 신학교의 창설, 사제들의 피정, 주교들의 정기적인 사목방문 등 성직자들의 쇄신을 주도하였다. 또 애덕실천과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신학을 발전시킨다. 여성들 역시 사도직에 커다란 비중을 두면서 참가하기 시작하여 교회의 쇄신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실제상황에서는 여성은 여전히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봉쇄규정이 없는 수도원에 다시 봉쇄가 강화되었다. 무척이나 다이나믹한 시기로 영적저술들이 많이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록 영적쇄신, 영성생활의 활성화가 이루어진 풍요의 시기였다.
루이제의 영적업적
가난한 귀부인이었던 루이제는 성 빈센트(1581-1660)와 만남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 애덕사업에 전적으로 뛰어든다. 이들은 사회의 가난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응답을 하고자 ‘사랑의 딸회’란 사도 생활단을 설립하여 가톨릭교회의 선교와 수도생활의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루이제는 그녀의 가장 훌륭한 길잡이며 협력자인 빈센트 성인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370년이 지난 긴 역사 안에서 빈센트와 함께 세운 그녀의 수도회의 삶의 방법은 오늘날 많은 활동 수도회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그녀가 지녔던 여성으로서의 리더쉽과 교육 그리고 섬김의 영성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는 루이제 성녀의 삶과 영성
루이제 성녀가 살았던 17세기의 상황은 오늘날 또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교회 또한 새로운 교황에 의해서 교회의 새로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머니이며 여성 목자인 교회를 꿈꾸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특히 복음화와 여성의 존엄성, 여성의 인권, 여성신학 등 여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분의 첫 자의교서 ‘복음의 기쁨’ 안에서도 이 문제를 깊게 다루고 있다. 또 오세르 바도르 로마노 바티칸의 주간지 안에서 매주 “여성”에 대한 것을 특집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가정사목과 복음화”라는 타이틀로 10월 5일에서 19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모임의 주제 역시 “여성”이다. 이러한 교회적 및 사회적 사조 안에, 17세기 한 사람의 여성으로 심도 깊은 영성을 살았던 루이제 성녀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루이제 성녀의 많은 덕행들 가운데, 올해는 특히 그분의 하느님 자비로운 사랑의 한 표현인 루이제 성녀의 생명을 살리는 모성성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I. 루이제 성녀와 모성성
(동정과 모성의 조화)
여성의 모성성은 동정성과 함께 여성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두 가지 차원 가운데 하나이다. 여성 안에 있는 이 모성성과 동정성은 인격체로서 여성의 소명 안에서 이 두 차원이 깊이 서로 설명해주고 보완해 준다. 이 두 차원을 우리는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 의미와 가치를 충만하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성녀들, 성경의 많은 여성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 루이제 성녀에게서 볼 수 있다.
1. 여성과 모성성
(내어줌과 생명에 봉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상기시키듯이, 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인격체요 주체이다. 동시에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줌으로써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가르쳐 준다. 특히 이것은 여성들의 모성을 온전히 이해시켜 줄 길을 열어준다.
모성은 남자와 여자의 혼인의 결합, 즉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창세 2,24) 성경적 “앎”에서 나온 결과이다. 여기서 “앎”은 상호증여이지 욕망이나 지배가 아니다. 이것은 여성 편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내어주게”한다. 이 내어 줌은 두 사람이 서로 한 몸이 되도록 상호간에 친밀하게 결합하는 부부애의 한 표현이다.
혼인을 통한 상호 증여는 새 생명의 증여로 이어진다. 이 새 생명도 그의 부모를 닮은 인격체이다. 모성은 처음부터 새 인격체에 대해 특별히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하게 여성의 “몫”이다. 이 개방성 안에서 여성은 아이를 잉태하고 낳으면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를 받아들여 세상에 내보낼 내적인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은 혼인의 결합과 연관된다.
성경에 의하면 새로운 한 인간의 잉태와 출생에 다음과 같은 여자의 말이 뒤따른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창세 4,1). “살아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하와의 이 외침은 새로운 인간 생명이 지상에 태어날 때마다 반복된다. 그것은 여인이 영원한 창조의 신비에 몸소 동참하고 있음에 대한 깊은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아기의 잉태와 출생 사이의 기간에 여자의 모성은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과정을 겪는다.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의 생리학적인 구조가 남자와의 혼인의 결합의 결과인 모성, 즉 잉태, 임신, 그리고 출생에 자연스럽게 부합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동시에 이 모성은 여성들의 정신 - 생리학적인 구조와도 부합된다. 따라서 여성과 모성에 대한 이해를 순전히 생물-생리학적인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는 한 중요하고 유익하다. 이처럼 제한된 이해는 인류와 세계를 물질적인 차원으로만 해석하려는 사조이다. 이 경우는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인간적 실재와 현상으로서의 모성은 인격체에 대한 진리의 바탕 위에서 온전하게 설명된다. 모성은 여성의 인격적 구조와 내어줌의 인격적 차원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을 살리고 세상에서 생명에 봉사하는 것이다.
2. 성녀 루이제와 모성성
(육체적 모성성: 동정성 → 모성성)
루이제가 스무살이 되자. 그녀는 봉쇄 수도원인 고난의 딸에 입회신청을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수도회 입회가 거절된다. 그래서 22살 나이로 루이제는 드 메디치 왕비의 시종인 앙트완 르그라와 결혼한다. 남편 앙투안은 하느님을 무척 경외하고 비난 받을 일이 없게 스스로 엄격했던, 훌륭하게 살다간 사람으로 묘사된다. 루이제는 앙투안이 전 부인 사이에 낳은 자녀들을 친자녀처럼 소중하게 키웠다. 그리고 아이들도 루이제의 헌신적인 사랑과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고는 친어머니처럼 따랐다. 그녀는 결혼 한 해에 아들 미셸을 낳아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기쁨을 체험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 그들은 중매로 결혼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이 싹텄다. 앙트완과 함께 있을 때 루이제는 기쁨과 가족의 따스함을 느꼈고 아들 미셀 앙트완의 탄생으로 한층 밝아진다. 루이제는 미셀을 사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는 어머니로서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러나 미숙아로 태어난 미셀은 발육이 부진한 아이로 늘 루이제의 걱정이었다.
결혼 7년이 지나 앙트완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원인은 결핵이었다. 그녀는 병으로 시달리는 남편과 병약한 아이들을 위해 훌륭한 간호사로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그는 열두 살의 우둔한 아들과 34살의 부인 루이제를 두고 마지막 각혈을 하면서 숨을 거둔다. 루이제는 남편을 자신의 반쪽이 아닌 전부로 사랑했다. 따라서 그로 인해서 과부로서의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루이제는 남편을 사랑했고 보살폈지만 그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이 무렵 루이제는 근심어린 자기성찰을 했다. 그녀의 고통에 사로잡혀서 영혼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1623년 5월 5일 성령강림 대축일에 그녀는 그녀에게 크나큰 평화를 가져다주신 ‘성령의 빛’을 받게 된다. 즉 ‘성령강림의 빛 체험’이다. 이때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진다. 그것은 소녀 때 고난의 딸회에 입회하겠다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이다.
“ 나의 마음은 즉시 모든 의심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나는 내가 청빈, 정결, 순종 서원을 하게 될 때가 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고 같은 서원을 한 사람들이 모임 작은 공동체에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 성령강림 빛 체험에서
당시에는 모든 수녀 공동체들이 봉쇄형태로 생활했기 때문에 루이제는 어떻게 서원을 한 여인이 파리거리를 “돌아다니는”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녀의 성령강림 빛 체험이 있는 후, 2년도 더 넘도록 그녀는 죽어가는 남편곁에 머물렀다. 슬픈 마음으로 그녀는 남편을 보내고, 슬픔과 외로움과 버려진 느낌에 거의 빠져들었다. 그녀는 혼자 어떻게 열두 살짜리 아들 미셀을 키울것인지 걱정하며 두려움 속에서 앞날을 맞이했다.
이무렵 신심생활 입문의 저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파리를 방문한다. 루이제는 그로부터 영적인 도움을 받는다. 벨레의 주교 까뮈로부터도 도움을 받았으며 1624년경부터 빈센트로부터 영적지도를 받기 시작한다.
루이제의 아들 미셀의 조산아로 태어났기에 성장에 문제가 있었고, 속도가 느리며 다루기 힘든 아이었다. 그러나 루이제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섬세한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들의 학교와 장래문제를 영적 아버지인 빈센트와 상의하고 빈센트는 거의 미셸을 맡아 지도한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그리고 ‘사랑의 딸회’의 장상으로 일하면서도, 루이제는 아들에 대한 돌봄을 계속한다. 빈센트는 “나는 당신처럼 그렇게 완전한 어머니를 결코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아들 미셀이 계속하여 성소의 갈등을 겪자 늘 도움을 주던 빈센트는 “어머니보다 하느님이 더 사랑하는 아들이니 맡기라”고 충고한다. 여성으로 대담한 사도직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구원과 교회의 역할에 커다란 변화를 준 루이제도 자신의 아들 문제는 어쩌지 못했다.
1650년 루이제는 미셸이 36살 때 가브리엘 클레르와 결혼시킨다. 결혼을 위해 루이제는 직업이 없는 아들에게 빈센트의 도움으로 재무부의 공직을 얻어주기 위해서 고생하면서 세금 지불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였다. 1651년 손녀 르네 루이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미셸은 귀가 어두워져 힘들게 구한 몽나이 궁전의 공직 자리를 포기해애 했다. 루이제의 모성애는 손녀딸의 미래 삶으로 확대되어 손녀에게 자신이 사랑하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당의 가난한 이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할 수 있도록 매년 18리브루의 연금을 남겼다.
3.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로 이어진 모성성
(영적 모성성: 모성성 → 동정성)
복음에 의하면 동정은 결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모성도 아울러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여인에게 아주 어려운 희생일 수 있는 이 같은 모성의 포기는 다른 종류의 모성을 가능하게 한다. “성령을 따라”(로마 8,4) 생겨난 모성이 바로 그것이다. 동정은 한 여인에게서 그녀의 특권들을 빼앗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인 모성은 수많은 형태를 지닌다. 예를 들면, 카리스마와 여러 가지 사도적 단체의 틀에 따라 사는, 성별된 여자들의 생활을 보면, 이네들은 영적 모성을 통하여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어려운 사람들, 즉 병자, 불구자, 버림받은 자, 고아, 노인네, 어린이, 젊은이, 감옥에 갇힌 이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마래서 사회의 그늘에서 방황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성별된 여인은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인간 개개인 모두 안에서 그녀의 정배를 만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대 25,40). 배우자적 사랑은 언제나 그녀의 활동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봉헌할 자세를 포함한다. 동정 안에서 이 자세는 정배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감싸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배우자적 사랑 역시 동정 신부로서의 여인의 마음 깊이 숨겨진 모성적 가능성을 통하여 인간 개개인 모두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될 때 인간 개개인 모두에게 개방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사도적 생활 수도 공동체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도회공동체 안에서 동정의 영적 모성에 대한 동일한 진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된다. 이 소명 역시 깊은 의미에서 인격적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동정과 결혼한 여자의 모성을 특수한 방법으로 함께 수렴하는데 있어서도 바탕을 제공한다. 이 수렴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모성으로부터 동정성으로 그 진행 방향을 이동시킬 뿐만 아니라, 동정성으로부터 모성으로도 그 방향을 이동시킨다. 후자의 경우 여성의 소명은 어리아이를 출산함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의 의미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결혼한 신부는 신랑에게 “자기 인격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체적 모성이 영육의 결합체인 인간에 대한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하여 영적 모성으로도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심오한 보완과 인격 안에서 깊은 일치를 인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
바오로 사도도 육체적이고 영신적인 모성의 중요성을 조금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사실 교회의 근본적인 선교활동을 밝히기 위하여 모성보다 더 나은 표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표상이시다. 교회는 그 자체 당연히 어머니 또는 동정녀라 불리니 만큼 신비 안에서 복된 동정 마리아께서는 탁월하고 독자적인 어머니와 동정녀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뛰어난 위치를 차지한다.
교회는 복음전도와 세례성사로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을 낳아 줌으로써 그들에게 불사의 새 생명을 준다. 이것이 인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을 따라” 이루어진 모성이다. 이 모성 앞에서 동정 안에 현존하는 여성의 역할이다. 또 공의회는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교회의 신비, 교회의 실재와 본질적 생동력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여성적인 것에 대한 언급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현상을 파악할 수 없다.
루이제 성녀의 빛의 체험과 영적 모성성: 모성성 → 동정성
루이제는 어린 시절에 고독하고 소외된 생활의 체험, 남편의 오랜 병환을 겪은 탓으로, 자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1623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성령께서 루이제을 깨우치시고 격려한다. 그때부터 루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된다. 성령강림에 받은 빛의 체험은 애덕의 사명으로 이어진다. 루이제가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은사를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으로 받은 힘이 원동력이다.
루이제는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어머니다운 사랑을 베풀었다. 특히 그가 결혼하기 전부터(파리기숙학교 시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의 마음속에 크게 울려 왔을 때, 마르가리트 왕비가 가난한 이들에게 어머니다운 사랑을 베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활비에서 얼마를 그들에 대한 봉사로 떼어 놓기 시작한다.
또 결혼 후에도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간혹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본당의 가난한 이들과 파리의 시립병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한다. 그녀는“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보잘것없는 내 형제 중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태 25, 40)라는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신비를 깨달았던 것이다. 나름대로 이웃을 돕고 있었던 루이제는 빈센트와의 만남 이후 영적시야를 넓히게 되고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사랑에 더욱 더 불이 타오르게 된다.
그래서 1633년 11월 29일 하느님의 아나빔(anawim), 곧 ‘작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원의를 표명한 여성 몇 사람을 루이제이 집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루이제는 가난한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 여긴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우리가 빚진 친절, 겸손, 인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한 루이제의 유언 안에서 그녀의 이 영성을 우리가 숙고할 수 있는데, 그녀는 유언의 첫째가 “가난한 이들을 잘 보살피시오.”이다. 그 다음, 자매들이 일치와 온정 속에 살아가기를 당부하고 끝으로, 성모 마리아께 열심히 기도하라고 당부한다(SV XII, 254).
1) 버려진 아이들의 돌봄
17세기 파리에는 매년 300-400 여명의 유아들이 길이나 교회 앞에 버려졌다. 나라에서는 ‘러 꾸세’라는 기관에 데려가 키웠으나 역부족이었다. 루이제는 버려진 아이들의 양육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1640년 젖먹이들을 더 잘 양육하기 위해서 의사로부터 유모의 모유 질을 평가한 증명서와 본당 신부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유모를 선발한다. 이러한 양육 방법은 프랑스 보육관리의 프로그램의 모델이 된다.
2) 교도사목
1619년 갤리선 함정의 전속사제로 있었던 빈센트는 1632년 갤리선 노예들을 위한 요양원을 세워 루이제와 함께 이들을 돕는다. 갤리선 노예들을 위해 파견된 사랑의 딸회는 노예들이 갤리선으로 떠날 때까지 파리에 수용되어 있는 유형수들에게 빨래, 청소, 요리, 감방으로 음식을 날라다 주는 일을 통해 이들을 육적, 영적으로 돌보는 일을 한다.
루이제에게 최선의 대상은 가난한 이, 즉 노예들이야말로 정신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비참한 이들을 위한 강도 높은 육체적, 정신적 봉사는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업으로써 빈센트는 이일을 두고 ‘그분의 위격’을 섬기는 봉사라고 표현한다. 죄수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태도를 위해 깊은 겸양과 자세를 가지고 노예들을 비웃음 소리를 못들은 체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라고 주위를 준다. 갤리선 노예들의 불쌍한 신체만큼 그들의 영적상태도 더욱 깊은 동정심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이 유형수사목은 오늘의 교도사목의 효시가 된다.
3) 환자돌봄
애덕부인회와 사랑의 딸회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차츰 파리와 각 지방에 있는 병원으로부터 파견요청을 받아 환자들을 섬기는 일만이 아니라 병원관리까지 맡았다. 루이제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우리 주님께 봉사하는데 서 얻는 커다란 행복”에 대해 강조한다. 또한 전쟁과 내란 등으로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일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돌본다. 사랑의 딸회가 시작한 병원에서의 봉사는 오늘날 수도자들이 병원에서 환자들의 질병과 영적으로 돌보는 병원사도직의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4) 노인사목
빈센트와 루이제는 가난한 노인을 보살피는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의 호스피스”를 세웠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능력에 따라 장갑이나 옷 그리고 신발을 만드는 등, 일을 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고독을 달래주고 생계에 도움을 주면서 이들의 인간적 품위를 지켜가게 한다. 그리하여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 육체적 돌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이 영적 품위를 지니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잘 쉬도록 보살펴 주는 사도직이었다.이처럼 루이제 자선사업은 모성적 사랑의 충만된 된것이었다.
그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은 모두 하느님의 일로 여기며 투신한다. 이들은 본당, 병원, 교도소, 기아병원, 그리고 고아원에서 활동한다. 이들이 사도직에서 중요시한 것은 육체적으로만 돌봄이 아니라 영적인 돌봄도 중요하게 여긴다. 수도자들이 그들의 완덕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사랑의 딸들은 이웃의 구원과 안위를 겨냥한다.
II. 루이제의 영성 안에 피어난 모성성
영성생활은 한 인간이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 내리는 고유한 방법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과 삶이다.(2고린 3, 10; 필립 3, 12-21).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삶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모델이며 이상이다(필립 3,9;갈라 2,20).
1.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 안에 담긴 모성성
(영적모성과 하느님 말씀의 실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모성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와 맺으신 계약 안에 한 몫을 차지한다. 매번 그리고 언제나 이 모성은 인간 역사 안에서 반복되고 항상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의 모성을 통하여 인류와 맺으신 계약과 관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면한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소리치며 마리아의 모성을 빌어 그분의 찬미하는 어떤 여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여기서 예수께서는 몸과 관련해서 모성의 의미를 확인하시지만 동시에 영의 차원에 속하는 더욱더 깊은 의미를 지적하신다. 그것은 영 자체이신 하느님과 의 계약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 사실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어머니의 모성에 있어서 꼭 들어맞는다. 복음의 빛 안에서 이해된 모든 여성의 모성은 이와 비슷하게 “살과 피로써”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활하신 하느님의 말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이 “말씀”을 수도하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하느님의 자녀가 될 능력을 부여받은 이들이 지상의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난 바로 이 인류의 아들과 딸들이다. 즉 피로 맺어진 새 계약의 차원이 인간의 부모역할 안으로 들어와 그 역할을 “새 창조”를 위한 실제적 임무로 만든다. 모든 인간 역사는 여성의 모성의 관문을 통과한다. 이 통과가 “하느님의 자녀들의 등장”(로마 8,19)을 조건 짓는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참으로 깊은 영성의 삶을 사셨습니다”
루이제의 영성은 영적체험과 일상의 체험이 함께 만들어낸 통합된 영성이다. 이러한 그녀의 영성은 그녀가 살았던 17세기 사회적 종교적 배경, 어린시절과 결혼생활 그리고 아들로 인한 고통은 루이제로 하여금 ‘십자가 영성’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으로 귀결된다.
루이제의 영성에는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두드러진다.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은 하느님의 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하고 수덕적인 삶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과부가 된 후 근 35년의 삶은 오직 가난한 이들을 영적 육적으로 돌보는 일에 헌신한다.
그녀의 영성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출발하며, 성령의 이끄심 안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봉사 활동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영적지도자인 까뮈 주교나 본당사제였던 레스톡도 그리고 루이제를 38년 동안 알아왔던 빈센트도 루이제의 순결한 정신을 칭찬한다. 이렇게 루이제의 하느님께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그녀가 오직 가난한 이를 위한 봉사에 로 이어진다.
2.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 안에 스며있는 모성성
(부성과 모성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사랑:
ex) 이사야(부성)/ 호세야(모성)
렘프란트, 돌아온 탕자/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모성성: 생명력, 사랑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 포용성, 개방성, 유연성, 인내, 감수성. 친교와 화합, 자유로운 매개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둔 생산의 영원한 신비는 여성의모성과 남성의 부성 안에 반영된다. 인간의 부모 됨은 남녀 모두가 다 나누어야 할 어떤 것이다. 부모됨이 모두에게 속하지만 여성 안에서, 특별히 아이의 출생 전 시기에 더욱 완전하게 수행된다. 이 생산성의 나눔에 있어서 직접으로 큰 대가를 치르는 쪽은 여성이다. 실제로 출산은 영성의 영육간의 에너지를 흡수해 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성은 이 공동 나눔에 여성에게 특별한 빚을 지고 있다.
모성은 여성의 모태에서부터 개발되어 나감에 따라, 생명의 신비와 특별한 친교를 갖게 되는 현상도 포함된다. 어머니는 이 생명의 신비 앞에서 놀라움으로 가득차고 고유한 본능으로 자신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감지한다. 성경의 시작의 빛 안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태중에 품고 있는 아기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그녀 안에서 자라는 새 인간 생명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하여 여성은 자기 아이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대하여 여성 특유의 포근한 태도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모성이 이 타고난 특성을 더욱 발전시킨다.
루이제에게 공동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력이 모델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느님이 나누는 친교와 사랑이 공동체 안에 존재해야 한다. 루이제는 삼위일체를 모범으로 삼아서 자매들에게 서로 화합하는 삶을 살라고 꾸준히 권고한다.
또한 하느님 생명의 신비가 만들어주는 인류에 사람들에 대한 포용성과 다정함은 그녀의 공동체적 자매관계 안에서 충만히 발휘된다. 그래서 그녀는 서로 안부를 물어보는 것, 감수성, 유쾌함, 유연성, 그리고 인내심 등은 자매들이 공동체를 설립하는 데 기본적인 요소로 보았다. 그러나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며 인간의 약점은 종종 부조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루이제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3.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 사랑으로 표현된 모성성
(고통에서 기쁨으로 성화되는 모성)
그리스도는 여인의 모성과 빠스카 신비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점을 지적한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요한 16,21). 그리스도의 이 산고는 원죄의 유산인 “산고”에 대한 것이다. 이 신비는 십자가 밑에 서 계신 성모님의 슬픔도 포함한다. 성모님은 이때 믿음을 통하여 당신 아들의 “자기비움”의 놀라운 신비에 동참한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가장 깊은 신앙의 비움이다. 그분은 “마음이 예리한 칼에 찔렸던 ” 이 어머니의 모습은 세상의 육체적 이든 정신적이든 고통을 당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자녀들이 특별히 질병이 걸렸거나 나쁜 길에 들어섰을 때, 또한 사랑하는 자녀들의 죽음 앞에서, 장성한 자녀들에게 잊혀진 어머니들의 외로움, 과부의 서러움, 혼자서 생계를 꾸러 나가야 하는 여성들의 고통, 유린당하고 착취당하는 여인들의 모습 등, 여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여인의 인간적 또는 모성적 존엄을 손상시킨 죄의 결과로 빚어진 양심의 갈등과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이 고통들을 안고 우리는 십자가 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해상할 때가 되어 고통당하는 여인에 대하여 복음의 말씀은 진통에 뒤따르는 기쁨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것은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파스카 신비에도 관련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날 사도들에게 기쁨이 밀려 올 것이라고 하신다. 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십자가 사랑으로 승화시킨 모성>
고통에서 기쁨/ 자신의 고통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고통 받고 있는 그리스도로/
고통은 연민이 자라는 수단/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부활신앙
루이제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에서부터 십자가를 주셨고 십자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루이제가 하느님께 가는 길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린 시절에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루이제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 불안한 성품은 그녀에게 뭔가를 상실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준다. 13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 외아들의 성직 포기와 성장 장애는 루이제에게 커다란 십자가였다. 이것은 피할 수없는 고통으로써, 바로 남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자신의 삶 안에서 알아듣고 체험한다.
“ 하느님께서는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내개 알려주셨다. 심지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로 낙인이 찍히고 어떤 나이에도 고통 없는 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선하신 하느님의 뜻이다” 그래서 루이제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 질문을 하고 자신의 고통을 십자가상에서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일치시키려는 개인의 노력을 한다.
루이제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고통받고 괴로워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상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사랑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것은 고통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연장이라 믿는다. 또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루이제는 자주 편지에 “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라고 쓴다(Writing, p. 278).
이런 어려움 가운데 다행인 것은 그래도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그 다음에는 후견인인 삼촌, 영적 지도자, 그리고 빈센트가 그러했다. 이 믿음의 체험이 자신의 상실의 감정을 어느 정도 채우면서 자기중심에서 이웃에게로 나아가게 한다. 사실 루이제가 자신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게 된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하면서이다.
루이제의 십자가 영성은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희망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다. 그녀는 자매들에게 “개인적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일치시킴으로써 영성적 의미를 부여” 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개인적인 고통을 연민이 자라나는 수단으로 보라고 조언한다. 마치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까지 끝까지 따라가면 사랑한 그 모성으로 루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오는 십자가의 고통들을 마치 자식을 품어 안는 어머니의 모성적 사랑으로 품어 안았다.
4. 섬김의 리더십으로 표현된 모성성
모성의 리더적인 측면
(겸손함과 부드럽고 따뜻한 리더/ 섬세하게 돌보는 리더/인격을 소중히 여기는 리더/
인내하는 리더/ 영민함과 지혜를 가진 리더)
루이제는 17세기 영성으로는 드물게 프랑스 사회와 교회 안에 탁월한 리더로서 활동한 여성이다. 루이제는 단순히 남을 이끌어감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의 종으로서 회원을 섬기고 돌보는 지도자이다. 그려는 개개인에게 섬세한 관심을 주며 공동체성을 중시하면서도 회원 개개인의 육체적, 영적, 정신적인 면까지 섬세하게 돌보는 장상이었다. 루이제는 공동체 책임자를 ‘종복’자매라고 칭한다.
종복이란 ‘영혼과 육신의 고통을 가장 잘 감내해야 하는 사람’을 말하며 ‘자매들을 저마다 인격체로 인식하고’ 사소한 고민들을 정성과 돌봄으로 가라앉혀 주는 역할을 하는 이다. 그녀는 참으로 산 같은 많은 일과 병약한 건강 앞에서도 아픈 자매들에게 친절하였고, 진료실에 있는 그들을 자주 방문하며 그들에게 작은 봉사를 하는 것을 무척 기뻐한다. 방문시 사도직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매의 가족 안부까지 전해주는 자상함과 따뜻한 애정을 보여 사도직의 어려움에 처해있던 자매들이 지지와 격려를 받는다. 이로써 루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섬기의 자세가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을 그녀가 사는 자매와 공동체에 섬김의 영성을 몸소 실천한다.
1617년에 빈센트는 사티옹 레 동브 본당에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부유한 여인들로 구성된 ‘애덕 동지회’를 설립한다. 이때 빈센트는 루이제에게 이곳을 공식 방문하고 지도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녀가 활동하던 영역은 이 지역만이 아니었다. 자치제로 운영되었던 이 단체들의 모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원칙 아래 이루어지며, 몇 년 안에 프랑스 전역에 설립된다. 때
루이제는 일생동안 이 회를 이끌고 조직하며 회원들의 거룩한 삶, 영적사정을 돌보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애덕 동지회 회원들은 루이제를 통해 헌신적인 돌봄과 실천적인 삶을 배우게 된다.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루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섬김”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들을 숙고한다.
1633년 11월에 루이제는 빈센트의 동의를 얻어 ‘사랑의 딸회’를 설립한다. 이렇게 시작된 공동체는 루이제가 사망한 1660년까지 고아원, 병원, 갤리선의 노예들, 영아교육, 노인 등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영적 육체적으로 필요한 모든 곳에 봉사하며, 루이제의 생존 시 폴란드까지 파견된다. 17세기 사회는 그녀의 인내력과 겸손,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사회적 관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교회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헤쳐 나간 탁월한 지혜를 가진 신앙의 여인이었다.
5. 그리스도적 덕행에 피어난 모성성
(그리스도의 덕행 안에 통합된 모성과 동정성)
그리스도의 겸손, 소박, 온유, 지혜, 식별력, 항구함(열정), 인내(고행)
루이제 삶의 기초이며 중심인 그녀의 영성은 “그리스도를 열성적으로 사랑함”이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였기에, 루이제는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고 짓밟히고 감옥에 갇히고 배우지 못하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주님’으로 돌보고 섬길 수 있었다. 루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만 하느님과 진정으로 일치하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그의 영성은 빈센트와 모든 성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초해 있다. 그래서 사랑의 딸회의 좌우명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도다.’이다.
루이제는 특히 그리스도의 강생을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겸손을 찬양한다. 이렇듯 루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자신의 충만한 사랑의 표현으로 체험하였고, 그분의 지상에서의 순례는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루이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를 가난한 이들 안에서 보려고 하였고 발견한다.
1) 그분의 겸손과 소박
루이제에게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바친 겸손한 종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자매들에게 큰 경의를 표하며 항상 부탁과 간청과 감사로 표현하고 마음을 전한다. 루이제의 영성은 점점 소박해져간다. 루이제는 이러한 소박의 덕행을 하느님 섬김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안에서 실천한다.
2) 그분의 온유함
루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으로 섬기기 위해 온유의 덕행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깊이 깨달았고, 그의 사도적 사업 안에서 이 온유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다. 그녀는 친절과 깊은 동정심이 영혼을 치료하는 길’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일을 온유한 마음과 겸손으로 행해야 한다. 그녀는 사랑의 딸회, 애덕 동지회, 애덕 부인회 등을 운영 관리하면서 그 어떤 말보다 자신의 태도에서 흘러나오는 온유의 힘이 더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
4) 그분의 지혜, 건전한 판단력
루이제는 예리한 통찰력과 식별력을 가진 뛰어난 지도자이다. 빈센트와 모든 일을 함께 할 때, 그녀는 일을 착수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식별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일에 대한 숙고와 “일의 시작, 일의 진전 그리고 일의 예상되는 결과까지”모든 면에서 검토한다.루이제의 하느님 봉사에 대한 열정, 그녀의 신중성과 훌륭한 판단력은 조직을 결합시키는 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루이제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빈센트와 많은 일을 해나가면서 불일치의 의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의 지도를 받는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참으로 지혜로 가득한 사람임을 말해준다.
5) 우리 주님의 행동을 닮으려는 그분의 항구한 노력
루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고아들, 병든 사람들, 갤리선 노예들, 글을 모르는 아이들, 회에서 버림받는 이, 그 밖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다. 루이제에게 하느님께서 쏟으신 은총의 표현은 그녀의 열정이다. 그녀의 이 열정은 믿음과 신념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닮으려는 항구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나오면서
루이제는 어머니의 사랑, 가정에서의 부모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외로움, 애정결핍, 소속감의 결핍에서 오는 어려움은 켰으리라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성으로서, 한 남편의 아내로서,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수도자로서 그녀가 보여준 삶은 경이롭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과 사랑, 그리스도인 으로써의 덕행인 인내력과 겸손,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사회적 관심, 그리고 탁월한 신앙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또 다른 인격인 모성이다. 즉 어머니다운 하느님의 사랑과 마음이다. 이 모성은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사랑, 헌신, 따뜻한 돌봄이다. 이 모성은 부드럽고 고요한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기운이고 힘이다.
인간은 홀로 자라거나 성장할 수 없다.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그 사랑을 먹고 그 사랑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변화시키고, 세상을 사람이 살만한 따뜻한 곳으로 변화시켜 가는데 핵심이 되는 것이 오직 사랑이다. 그 사랑은 생명을 잉태하고 모든 것을 살린다. 특히 어머니다운 사랑이다. 여성 안에 있는 모성은 일상 안에서 나를 넘어 타인에게로 향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이해, 그 안에서 싹트는 섬세한 배려와 관심, 친절, 보살핌의 정서로 표현된다.
특히 루이제 성녀 안에서 있는 모성적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으로 피어났다. 이 모성적 사랑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가난한 존재’라는 참된 자아 인식과, 그 분께 대한 오롯한 의탁과 신뢰, 인간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연민, 온유, 정성어린 보살핌에서 드러난다. 또 이 사랑은 전적인 자기 증여, 자기 포기, 와 겸손, 희생적 사랑이다. 이 사랑은 모두를 참되게 인간을 사랑하는 생명과 구원의 길이다. 특히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가정의 파괴,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 개인주의, 등, 그리고 여성들의 자아성취와 많은 욕구들 안에서 상실되어가는 이 모성성은 오히려 피폐해져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으로 루이제 성녀가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사랑의 유산이다.
루이제 성녀의 삶을 보며 위대한 여성은 곧 ‘평범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이러한 마음이리라. 어머니의 마음이란 기쁨, 고뇌, 고통을 나열하지 않아도 금새 알 수 있다. 잴 수 없는 사랑, 한계를 넘는 사랑, 품어않으며, 어느 한순간도 절망하지 않는 사랑으로 모든 이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모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완전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성은 생명에 대한 봉사이다.
『여인은 사랑을 만들고 어머니는 기적을 일으킨다』이 제목은 성녀 루이제 드 마리약의 생애를 쓴 김현옥님의 책 제목이다. 이 분은 성녀 루이제에 대해서 참 잘 파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라는 말은 따스함이 넘친다. 그 이름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하고 고통 속에서 위안을 느끼게 한다. 모든 여성이 진정 어머니가 될 수 있다면 이 세상 구석구석은 향기로움과 다정함으로 행복이 가득할 것이다.
루이제 성녀가 위대한 것은 바로 그런 평범한 어머니며 그 모성을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데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고 있다. 루이제 성녀가 가난한 이들과 그들의 공동체와 자매들에게 그리고 그의 남편과 자식들에게 보여준 사랑은 바로 이것이다. 한 여성이 갖는 두 가지 차원의 동정과 모성을 넘나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그 시대에 가장 버림받은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루이제 성녀의 어머니 마음과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충실성,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능력과 섬김과 봉사의 리더쉽은 탁월하다.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교회는 루이제 성녀가 지닌 이 사랑이 필요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 사랑의 부드러움이 담겨진 모성적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체되어가는 가정에서도, 도덕성을 잃어가는 사회에서도, 권위적이고 제도적이어가는 교회에서, 그리고 참된 수도자의 모습을 상실해가는 수도원에서도......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어머니이며 여성 목자인 교회를 희망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신학생들과 수도자들에게도 노총각 노처녀들이 되지 않고 어머니가 되라고 간곡히 당부하신다. 우리 모두 루이제 성녀가 지닌 부드럽고 따뜻한 모성적 사랑으로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자비로운 하느님 세상을 만들어야 겠다.
“우리에게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도우라”라는 루이즈의 어머니 마음을 담은 사랑의 가르침은 우리 가슴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요셉더빈, 성찬성 역, 『루이제 드 마리약』, 도서출판 영성생활, 2004.
2. 하 마리안나 수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 수원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
3. 오드리 깁슨, 케아런 니브스, 『루이즈 드 마리악과 함께 드리는 기도』, 성바오로, 2004.
4. 베티앤 강의, 『동서양에서 본 성 빈첸시오와 성녀 루이즈의 영성』, 도서출판 영성생활, 2007.
5.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가톨릭여성신학회,『루이즈 드 마리약을 통해서 본 21세기 가톨릭 여성 수도자와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과 전망』, 2006.
6. 김현옥, 『여인은 사랑을 만들고 어머니는 기적을 일으킨다』, 성바오로출판사, 1993.
7. 성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생활규범』/ 『생활규범 해설서』, 영성실현위원회
8.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 한국전주교중앙협의회.
9.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가정 공동체』, 한국전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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