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편지』를 읽고 에드워드 윌슨에게 보내는 편지
에드워드 윌슨에게!
귀하께서 하루에도 생물 100여 종이 멸종해가는 현시대의 엄청난 환경 위기 앞에서 목사님을 통하여 종교계에 보낸 간절한 편지를 잘 읽었습니다. 서로의 이념이 다른 이들에게 함께 연대해서 위기에 처한 지구의 환경과 지구의 생물들을 보호하고 생명과 희망이 있는 지구의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인류애적 사랑을 가득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잘못된 종교적 이념이 이 지구에 생존하는 자연을 위기로 몰아가는데 한 몫을 했구나 하는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즉 하느님을 창조론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인간을 위해 주어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하느님의 창조를 이어가도록 돕는 ‘관리인’이라는 정신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희생되어도 되는 대상(객체)로 만들어 버린 것이 지금 이러한 결과를 초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말씀대로, 지금 해결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듯이, 우리가 함께 의식해서 자연을 보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임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인 삶을 행한다면, 지구와 인간이 처한 이 재난에서 구원될 수 있으리라는 그 말씀에 진심으로 동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신론자이든 유신론자이든 우리 모두는 함께 공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고 이에 주어지는 재난 역시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하는 시련이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사실 박사님처럼 이렇게 인류의 생물종들과 삶의 환경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영적으로 풍요로운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창조물들의 운명은 인류의 운명이라고 했듯이, 지금 우리가 함께 탄 운명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자연을 파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리고 인간은 ‘우아한 퇴보’를 해야 하는데 인간은 끝이 없는 ‘진보’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자연 선택에 의한 자기조직화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창조물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욕구를 위해서 포획되고 파괴되어 감을 윌슨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더욱더 자각하게 됩니다.
당신의 말씀 때로 종교와 과학이 마주 손을 잡고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스스로 에게 자문하게 됩니다. 자동차를 사용하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물을 아껴 쓰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인스턴트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는 등 수도자인 저희는 이렇게 작은 일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왠지 이것으로는 부족한듯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와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을 추구하고 계속해서 집을 짓기 위해서 농지를 없애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인공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라면 수도자들은 문명의 이기를 떠나 자연으로 모두 돌아가는 삶을 예언자적 증거의 삶을 택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인식과 몸짓이 이 세상에 조금씩 변화시키고 환경위기의 가속화를 늦추고 생태를 다시 살리는 일임에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거시적 차원에서 종교인들이 함께 이 일에 연대에서 동참하는 일이 꼭 있어야 함에 절심함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원전 없는 사회’ 만들기 와 ‘4대강 살리기’로 수도자들이 연대해서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편지는 저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재촉하도록 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
당신의 ‘생명의 편지’에 함께 저도 동참할 것을 약속드리며, 저도 일상의 삶속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은 일에, 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에,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 생물들에, 생물들에 대한 관리자의 정신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동참하도록 기도하고 또한 저도 참여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이러한 정신을 예언자적으로 불어넣고 말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시고 계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당신의 글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마리아 아나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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