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나훔 예언서

마리아 아나빔 2013. 7. 11. 10:07

 

나훔 예언서 입문

 

 

 

 

 

 

 

 

나훔예언서는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일곱 번째 예언서 이다. 나훔서는 모두 3장 47절로 짧지만 니네베에 관한 신탁을 힘 있는 말씀으로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I. 입문

 

1. 책의 이름

 

예언자 나훔이 전한 말씀이라고 하여 그 이름을 따서 붙였다. ‘나훔’이라는 히브리어는 ‘위로 받은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2. 저자 및 저술 연대

 

저자로 소개되는 나훔은 엘코스 출신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3,8-10에서 저자는 이미 파괴된 테베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기원전 633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세 장 전체에 걸쳐 예언한 니네베의 멸망은 기원전 612년에 실현되었다. 그래서 나훔서의 저술 연대는 기원전 663-61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시대배경

 

2세기 동안이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손아귀에 넣고 흔들었던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7세기 말에 아수르바니팔 임금이 죽자 (기원전 627)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나보폴라사르가 바빌로니아 임금으로 즉위하여(기원전 625) 세력을 키웠고, 메디아도 합세하여 아시리아를 압박하였다. 지금까지 아시리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제 정세가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거대한 도시 니네베(현재 이라크의 모술시 맞은 편)는 산헤립 임금이 세운 아시리아의 수로로, 제국의 힘과 부를 상징하는 전쟁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니네베가 “피의 성읍”(3,1)이라고 불릴 만큼, 정복민들을 대하는 그들의 잔인성과 비도덕성은 악명이 놓았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니네베 성의 규모는 둘레가 12km, 성벽의 놓이는 25km이며, 성벽에는 15개의 성문이 있었다. 그리고 성 밖에는 과수원과 목장과 농지가 인접해 있었다.

나훔은 아시리아의 위세를 한풀 꺾는 니네베 멸망을 선포하면서, 오랜 세월 강대국에 짓눌려 위축된 채 살아야 했던 백성에게 희망을 열어 주고자 했다.

ex) 기원전 7세기의 유다: 나훔, 스바니야, 하바쿡, 예레미야 예언자가 활동

- 아시리아의 지배(기원전 7세기): 히즈키야- 므나쎄 - 암몬 - 요시아

- 바빌로니아 지배(기원전 6세기): 치드키야 - 여호야킨 - 여호야킴 - 여오아하즈

 

4. 구분

 

나훔서는 아시리아가 멸망하게 된 이유와 주님의 심판을 탁월하게 묘사한 시적작품(알파벳 시편 구조)이다. 여러 가지 문학유형으로 짜인 이 예언서는 모두 이방 민족들의 파멸을 묘사하는 어두운 내용이다. 나훔은 불의한 권력자들의 말로를 힘차고 생생하게 표현하며, 결국에는 주님께서 승리하신다는 확신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즉 어두운 시재 하느님의 위로와 희망을 의 메시지를 전하면 이스라엘을 위로한다. 그래서 나훔은 예언자들 중에서 뛰어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을 벌하는 하느님의 도구였던 아시리아가 멸망하리라는 예언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이다. 아무리 사자처럼 강한 아시리아이지만 결국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1,1-8: 머리말, 열정과 보복의 하느님(질투하시는 하느님/ 복수하시는 하느님/ 선하신분으로 이스라엘의 나약함에 힘있고 강력하신 하느님을 강조함)

1,9-2,3: 니네베 함락

2,4-3,19: 니네베의 완전한 멸망(군사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힘들게 했기에 그것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이다. 따라서 군사적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5. 예언자 나훔

 

나훔은 엘코스(1,1) 출신으로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하였는데, 엘코스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예언자 나훔은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전하고, 억압자들에게는 서슬 퍼런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요나는 니네베가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반면, 나훔은 니네베가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멸망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경고하였다.

성전의 제사의식과 활동에 정통한 것으로 미루어 나훔은 성전 주변에 머무르며 예언직을 수행한 성전 예언자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의 활동이 예루살렘에 한정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는 예레미야와 같은 대예언자의 신탁과 같이 하느님의 역동적인 개입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나훔은 당시 아시리아를 극도로 증오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분노를 대변하며, 그들이 그동안 받은 상처의 아픔을 씻을 수 있는 위로와 강한 희망을 주었다. 그런 연유로 후대에 그를 일컬어 ‘천둥 같은 예언자’라고 불렀다.

 

 

II. 내용

 

1. 머리글(1,1)

 

예언서의 전형적 형태로 예언자의 이름, 활동시기, 예언의 선포대상을 제시하고 있다.

 

2. 열정을 지니신 하느님(1,2-8)

 

나훔서는 고대 근동세계를 지배했던 아시리아 대제국의 수도 니네베의 멸망을 예견하면서 고통 받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의 능력을 대자연의 현상으로 표현한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능력이 없어 참는 것이 아니며, 결코 선인과 악인을 동일하게 다루지 않으신다고 역설한다. 또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맞서는 자를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고 세 번씩 반복하여 기술한다.

이처럼 나훔은 하느님을 불의와 부도덕을 책벌하는 정의의 신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환난의 날에 피신처가 되어 주시는 자비로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시고(1,3), 선하고 의로우신 하느님을 강조한다(1,7). 나훔서는 모든 자연계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현시를 잘 인식하고 늘 응답하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3. 니네베의 멸망 예고와 유다의 구원 선포(1,9-2,3)

 

전반부(1,9-14)에서는 아시리아의 패망을 예고한다. 나훔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언급한 후에 바로 말머리를 돌려 거만하기 짝이 없는 강대국 아시리아를 향한다. “너희는 주님께 무슨 음모를 꾸미느냐?”(1,9)는 말은 곧 앞에서 언급한 정의의 하느님,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어떻게 대적할 수 있는냐는 물음이다(이사 37,23-29).

후반부(2,1-3)에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 축제의 찬미가가 울려퍼진다. 나훔은 유다가 적들에게서 구출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드린 서원을 지켜야 한다면서, 시련을 거친 후 다시 돌보아 주시니 용기를 내라고 격려한다.

사도 바오로는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2,1) 는 구절을 로마 10,1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적용하였다. 전령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평화’이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신 구원의 상태를 뜻한다. 또한 나훔은 포도밭의 이미지를 통해 남북이 통일된 이스라엘의 재건을 예고한다(2,3).

 

4. 니네베의 멸망을 경축함(2,4-3,19)

 

이 부분의 주요 내용은 압제자의 파멸이 하느님의 백성과 억눌린 모든 백성에게 기쁨이 된다는 말씀이다. 나훔은 전쟁에 패배한 니네베가 이웃 나라에 약탈했던 보물을 빼앗기고 멸망하는 장면을 목격이라도 한 듯이 상세히 기록한다(2,4-8 참조).

그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사되는 무장한 철 병거와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보이고, 그것이 쏜살같이 다리는 모습은 번개 같다고 하면서 니네베 성에 대한 공격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당시 군인들이 붉은 색을 좋아하여 구리를 입혀 만든 방패를 붉은 색으로 칠하였기 때문이다. 또 니네베가 멸망하고 고통 받게 된 원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진술하며(3,4 참조), 그들을 악행에 상응하는 벌로 다스리라고 선포한다. 니네베를 한 무리의 사자 떼로 묘사하는데, 이는 니네베가 누리던 부와 풍요가 다른 나라를 폭력으로 짓누르고 약탈한 결과임을 비꼬기 위함이다.

 

 

III. 가르침

 

예언자 나훔은 아시리아의 포악하고 잔인했던 통치는 막을 내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될 것을 알린다. 그는 약속에 성실하시어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 언제 어디서나 의로운 이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알려 주고자 한다. 아무리 튼튼한 방어벽과 군사력과 무기를 준비해도 하느님께서 치시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그 시대에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악의 힘이 강할지라도 언젠간 끝이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 희망을 가지게 한다. 현실이 악으로 암흑 같아 보이고 미래가 없어 보일지라도 마치 빛이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듯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선하게 해줄 것이기에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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