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렛(5,1-19): 재물의 위험과 해결책
들어가면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 (4:17-5:6)
• 성전에 갈 때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란?(4:17)
• 서둘러 내뱉는 말의 위험 (5:1-2)
• 서원한 바를 실천하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을 서원하지 말라(5:3-5)
• 꿈에 대한 그릇된 믿음에 대한 경고 (5:2,6)
재물의 위험과 해결책 (5:9-19)
• 재물의 헛됨 (9-16): 부의 축적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설파
•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기 몫을 최대한 누리며 즐기되, 얼마나 재물을 모을 것인지, 그 끝이 어떠할 것인지를 걱정하지 말라.
(17-19)
Text 안에서
1-6절: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
코헬렛 5, 1-6절은 코헬렛 4장 17절에서 5장 6절에까지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내용으로 연결선상에 놓인 내용이다. 하느님께서는 길게 늘어놓는 기도가 아닌, 마음의 진심과 참된 공경을 기뻐하신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말씀을 드릴 때는 서두르지 말고, 죄짓는 일이 없게 말을 적게 함으로써 피조물로써의 창조주께 대한 태도를 드러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1-2절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기도의 가치는 말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어리석은 자의 기도는 말수가 많기 때문이다(잠언10,19/집회서7,14/ 마태 6,7). 더불어 일이 많으면 꿈을 꾸게 되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나온다는 이야기 역시 종교행위와 기도에 적용된다. 바꾸어 말하면 많은 말을 가지고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조언한다. 따라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기에 올바른 기도와 종교행위로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올바로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더 나아가 설교자는 종교행위에 대해서 하느님께 서원하면 지체 말고 꼭 약속을 지키도록 한다. 지키지 못할 경우는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원의 실천은 율법에 의하여 마련되기 때문이다(레위 27,1-27). 또한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몸을 죄짓지 않도록 하며 ‘하느님의 사자’ 앞에 그것이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자’는 ‘심부름 꾼’ 천사의 뜻도 있지만, 이 절은 성전의 사제(말라 2,7), 관리인, 예언자(하깨 1,12)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들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고(레위 10,11/신 명 33,10), 특히 서원을 세울 때에는 약속한 것을 받고 그것을 증명할 의무가 있었다(레위 23, 8-22). 그러므로 말이 많은 곳에 허무가 많기에 하느님을 경외함이 가장 지혜로운 길임을 가르친다.
7-8: 불가피한 권력과 남용
설교자는 당시의 사회계급의 비유로 일반인에 대한 관료계급의 횡포를 보여주고 있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는 기생충과 같이 금전을 착취하고 그의 상관은 그의 몫을 받아 배를 채운다. 그리고 그 상급자의 부정부패는 더 심하다. 이러한 부정부패한 사회의 모습은 모든 시대에 있고, 오늘날의 이 시대에도 그대로 자행되고 있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이러한 현상때문에 놀라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권력 또한 허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설교자는 이를 통하여 국가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공정과 정의’가 유린됨을 안타까워한다(7절).
반면 농경지에 종사하는 이는 행복하다고 칭송한다. 그리고 이 농경지를 돌보는 임금 또한 칭송하고 이는 나라에 유익함을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절). 예나 지금이나 땅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 임금조차 농경으로부터 세금을 받는다. 따라서 참된 재산은 땅에 있고, 토지의 이익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조차 그것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오늘날 산업과 정보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농산업에 대한 일깨움을 준다. 또한 많은 자본주의와 물질로 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국가의 정치인들과 권력가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배우게 한다. 노동하는 일을 꺼리는 이 시대에 땀흘러 일하는 노동의 가치와 그로 인하여 얻은 재산의 소중함이 권력가들이 노동 없이 착취와 횡포로 얻은 돈보다 가치롭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9-19절: 재물과 그 위험
설교자는 이제 인간이 재물을 추구하는 것과 그 위협성에 대하여 조언한다. 먼저 인간에게 제물이란 만족을 모르는 것이라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한 큰 재산을 가졌다고 하더라고 만족이란 없기에 재산은 ‘허무’하다는 것이다(1절). 또한 재산은 많으면 그것을 넘보는 이도 많고, 아무리 재산을 쌓더라도 그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극히 적은 양이며 거의 모두 기식자들이 먹어버리는 것을 볼 뿐이기에 이 또한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10절). 반면 적게 먹든 많이 먹든 노동하는 이들은 달콤한 잠을 자고 그에 비해 부자들은 배부르지만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함을 상반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설교자는 부자의 재산이 불행이 되는 것을, 마치 어머니 배에서 나온 것처럼 그렇게 알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표현은 지혜문학에서 볼 수 있다(욥기 1,21; 시편 49, 10-18). 따라서 애쓴 보람이 바람일 일뿐, 걱정과 근심, 불만 속에 살아간다. 여기서 “어둠 속에서 먹으며”라는 표현은 가난하고 슬픈 상태를 의미한다. 글자 그대로는 가난뱅이가 된 부자의 궁핍을 말한 것이지만, 상징적으로는 돈을 잃었을 때의 번민, 괴로움을 가리킨다(1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하여 재산을 얻고 그것을 즐기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반면 재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벌 혹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설명한다. 즉 부자이든 가난한 이든, 부자가 되었다가 가난한 이가 되었든, 가난하다가 부자가 되었든 이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로부터 비롯되고, 주어짐에 감사하고 한정된 생애 안에 즐거움을 누리는 일만이 유쾌한 것임을 조언한다(17-18절).
나오면서
코헬렛 5장은 4장의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에 이어 불가피한 권력과 그 남용에 대해 언급한다. 국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억압당하고 공정과 정의가 유린되더라도 놀라지 말 것과,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코헬렛은 국가에 대한 신화적 생각을 냉정하게 깨트린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에서도 권력 남용과 법 위반의 고통은 피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어서 재산과 관련된 금언들이 나온다. 재물을 원하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은 결국 즐거움을 잃게 만든다. 또한 자신의노고로 쌓아온 재산이 좋지 못한 사업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때가 있으니 이것은 더 큰 불행이다. 애쓴 보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코헬렛은 다시 한번 “하느님께서 주신 한정된 생애 동안”(5,17) 즐기는 것이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 참고문헌: 구약성경 주해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10, pp.1824-1826.
시서와 지혜서, 성서와 함께, 영원한 도움 성서 연구소, 1981, pp.147-149.
전도서 주해집(시편), 크리스찬출판사, 1986, pp. 26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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