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춤사위

당신과 함께라면

마리아 아나빔 2014. 6. 9. 16:06

 

 

 

 

당신과 함께 라면

(Nevertheless I am continually with you;)

 

 

 

“당신과 함께 라면 이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시편 73, 25절 에서 -

 

 

 

 

시편은 전체적으로 기도다. 물론 엄격한 의미의 기도가 아닌 시편들도 있다.

그러나 시편이 하느님 앞에 선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시편 전체가 결국에 가서는 하느님께 향한 말씀이 된다.

그래서 시편을 이해함은 시편을 자기의 기도로 만듦이다.

시편을 가지고 진정으로 기도할 때 비로소 시편을 이해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시편 73은 지혜문학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 변신론의 문제를 다룬다. 즉 하느님께서 선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왜 악인이 번성하게 그대로 두시는가? 인과응보의 원리가 전통적 지혜문학의 가르침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단순히 흑백논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이 시편은 한 기도자가 자신의 믿음과 현실 사이의 격차로 말미암은 신앙의 위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선하심, 좋으심’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 감을 보여준다.

 

 

시편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누릴 수 없었던 것, 올바로 살기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 부, 편안함, 건강, 향락을 누리는 악인들의 번영을 부러워한다(3절). 한 때는 올바름 삶과 세속적 편안함, 둘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고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며 자신의 기준을 지키지 못한고 흔들리기도 한다(13절). 그러나 그는 신앙 공동체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15절).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에서 악인들의 행복한 삶은 죽기 전까지로 한정되어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함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하느님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하느님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가 갖고 있는 이기주의적인 생각의 협소한 틀 안에 구겨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2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느님과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된다(23절). 하느님과 함께 있음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영원한 친교에 희망에 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은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행복이 된다(28절). 그가 이것을 선택할 때 하느님은 그에게 ‘좋으신 분’이시고 그의 ‘피난처’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