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 시편 34, 9절 에서 -
구체적 삶의 현장을 찬미 노래의 터전으로 삼은 시편의 삶은 고귀하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고 노래가 되며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 된다는 사실,
그것이 시편이 바라보는 삶에 대한 애틋함이다.
시편 34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해방된 것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교훈적인 짧은 격언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하느님께 피신하는 의인의 노래이다.
시편이 노래하는 의인의 참된 행복은
하느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행복이다.
그 행복은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알아보는 행복이며,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맛들이는 것이다.
즉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아보는 것에 있다.
시편 저자가 노래하는 주님의 좋으심을 맛들인 다는 것은
그분이 지닌 완전함을 찬양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한계를 알고 하느님이 영역을 존중하며
매순간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계심을 의식하는 삶이다.
주님의 좋으심을 맛들이는 사람은‘그분께 피신하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음은 그의 가난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히 매달려 의지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께 의지 하는 가난한 이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또 하느님께 의지하는 가난한 이들은 결코 잊히지 않고
그들이 하느님께 가지는 희망은 계속될 것이다.
시편의 ‘가난한 이’는 어떻게 보면
하느님으로 인해 ‘부유한 사람’이다.
참으로 가난한 이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 겸손 되이 가진 것을
다 가져가시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
이것이 시편이 바라는 기도의 방향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는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찬양은 가난함의 또 다른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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