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길잡이

집회서 입문(1)

마리아 아나빔 2015. 4. 12. 16:51

 

 

 

                 집회서 입문(1)

 

 

I. 책의 이름(명칭)

 

집회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저자가 자신을 소개한 유일한 책이다(50, 27). 저자는 자신을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라고 소개한다. 이 때문에 유대교 전승에서 이 책은 시라의 아들의 잠언또는 간략하게 시라의 아들이라 불린다.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이 책을 시라의(아들의) 지혜라는 뜻을 지닌 소피아 시락스라고 부른다. 라틴어 성경에서는 교회의 책또는 모음의 책이라는 의미 리베르 에클레시아스티쿠스(Liber Ecclesiasticus)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이 책에 교회 공동체를 위한 여러 가지 신앙적 윤리적 지침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II. 저자

 

최근 발견한 히브리어 원문과 몇몇 중요한 사본에 따르면, 성경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의 이름이 시라의 아들 예수로 나온다(집회 50, 27). 예수 벤 시라가 집회서의 저자이다. 시라의 특정한 후손이 썼다는 사실에서 시라의 지혜또는 시라서라고도 부른다.

 

그리스어 본문 머리말에서 이 책의 그리스어 번역자는 저자에 대해 나의 할아버지 예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와 다른 선조들의 글을 읽는 일에 오랫동안 전념하셨습니다.”(6-9) 라고 소개한다. 또 한 독자들로 하여금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여 더욱 진보하게하려는”(14) 목적으로 자신이 먼저 율법과 예언서와 그 외 선조들의 글에서 충분한 소양”(11) 갖춘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 학교를 열고 가르친 율법교사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시라의 아들 예수라고 불린 저자는 예루살렘 태생으로 기원전 250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175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III. 저술연대와 언어

 

유다인들이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시절인 기원전 약 190년에서 180년경,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어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머리글 15-20). 그런데 벤 시라가 기원전 132년 이집트로 여행하던 중 히브리말로 쓰인 집회서를 발견하고, 저자의 손자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그리스말 사본이 유일한 집회서인 줄 알았으나 1895년과 1931년 카이로에서, 1956년 쿰란의 둘째 동굴에서, 마지막으로 1964년 마싸다에서 히브리말로 된 단편들(집회서 3분의 2분량)이 발견되면서 집회서의 구성에 대해 많은 연구가 시작되었다. 집회서는 히브리말 사본으로는 원래 히브리말로 쓰였던 집회서와 후에 새롭게 덧붙이고 각색하여 생겨난 또 다른 히브리말 사본이 있고(기원전 1세기), 그리스말 사본으로는 벤 시라가 번역한 것과 기원후 1세기경 각색과 편집을 통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그리스말 사본이 있다.

 

번역자는 머리말에서 에우에르게테스 임금 통치 삼십팔 년에 저는 이집트에 가 얼마 동안 머물면서, 적지 않은 교훈이 담긴 이 책의 사본을 발견하고, 정성껏 열심히 이 글을 반드시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27-30)라고 밝혔다. 에우에르게테스는 기원전 170-116년에 이집트를 통치하였기 때문에 그의 통치 삽십팔 년은 기원전 132년경이다.

 

예수가 번역자의 할아버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기원전 132년부터 두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시점이 이 책의 저술시대라고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에 안티오코스 4(기원전 175-164)가 자행한 유대교 박해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점도 저술시대를 가늠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토대로 이 책은 대략 기원전 190-18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IV. 저술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고대 근동의 통치권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게 양분된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분열된 후 기원전 312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셀레우코스 왕조에게서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빼앗았다. 이집트 왕조는 경제적 생산력을 최대화하려는 정책을 폈으며, 이러한 정책은 유다지역의 지도층과 부유층에게 영향을 주어 헬레니즘 문화에 들어들게 하였다.

 

기원전 198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가 프톨레마이오스 4세에게서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되찾아갔다. 이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위해 세관일을 해오던 토비야 가문이 분열되었으며, 일부는 셀레우코스 왕조 편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상황이 이 책의 저자인 벤 시라에 의해 왕권은 민족에서 민족으로 넘겨지는데 불의와 폭력과 재물 때문에 그렇게 된다.”(10,8)라는 말로 묘사되었다.

 

그럼에도 안티오코스 3세는 유다인들에게 호의적 태도를 보였고, 율법을 유다인들의 통치법으로 인정하였다. 이처럼 통치자들은 관용정채 덕분에 그리스 문화와 유다교 문화가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신론적, 범신론적, 형이상학적, 사변적인 그리스 사상은, 유일신 사상을 고집하며 야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유대교 사상과는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원전 189년 안티오코스 3세는 스미르나 근처 마네시아에서 로마에 패배하였고, 그로 인해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다. 기원전 187년 안티오코스 3세가 죽고 셀레우코스 4세가 왕위를 이었으나 얼마 안 되어 안티오코스 4세에게 왕권을 빼앗겼다.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의 사제직을 야손에게, 그 다음에 메넬리오에게 팔아넘겼다. 그러다가 유다교를 걸림돌이라 판단하고 종교박해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벤 시라는 이처럼 서로 상반된 헬레니즘 문화와 유다이즘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살았다. 그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동시에 유대교 전통 신앙을 고수해 왔다. 그가 헬레니즘 문화를 수용하였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41,14-42,8),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43,15-25)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스토아 철학과 유사하다는 점과 인생을 즐기라는 충고(14,11-16;30,21-23; 31,27-29)가 덕의 목적을 인간의 쾌락에 두는 에피쿠로스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벤 시라는 헬레니즘의 새로운 요소들을 구약성경의 전통과 잘 조화시키면서,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선민이며 율법을 받은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새로운 문화의 위험성을 직시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V. 저술목적과 구약성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계

 

1. 저술목적

 

기원전 2세기 초 팔레스티나의 지배권은 이집트에서 아시리아로 넘어갔다. 아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는 유다인들에게 호의적인 정책을 폈고 그들의 종교적 특권을 인정했으나, 후계자인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인들에게 그리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강요했다.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는 가운데, 벤 시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과 역사의식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또 만백성을 위하여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증거하려고 노력했다. 율법과 지혜 전승이 상충되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치며, 믿음이 흔들리는 유다인들을 헬레니즘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한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충실하라고 권고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겨난 목적에 관한 일종의 긴 묵상집이라고 할 수 있다.

 

ex)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유다교의 종교적, 문화적 유산, 신관과,세계관, 선민 특권을 옹호하고자 함.

이스라엘은 계시된 율법을 통해 참 지혜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리스 사상과 문화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

전통적인 종교 전통과 지혜 전통을 종합하여 전통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실천적인 행동 지침서를 제시함.

이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됨.

 

2. 구약성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계

 

벤 시라는 자신이 속해 있는 유다 공동체에 교훈을 주기 위해 성경을 읽고 생활화하였으며,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자신이 수집한 지혜 자료들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의 유명한 말씀을 활용하였다(신명 6,5; 29,21; 창세 27; 느헤 9,8). 또 단문 형태의 가르침을 설교 형태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활용하였다(탈출 20,12; 신명 5,16; 창세 27,27-29; 판관 17,1-4; 잠언 17,6; 레위 19,3;20,9). 특히 벤 시라는 잠언을 많이 활용하였다. 여러 병행구에서 유사한 주제와 용어가 활용되었지만, 사회적, 종교적 개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잠언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가르침을 전하는 분위기지만, 벤 시라는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이 늘 새로운 것처럼 소개한다. 잠언은 토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벤 시라는 이스라엘의 역사, 과거에 대한 기억, 전통적 가르침,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는 예배 생활의 우월성 등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분명한 것은 벤 시라가 잠언을 단순히 자신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았으며, 솔로몬에게서 전해진 이스라엘의 고유한 지혜 전승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잠언을 읽고 숙고하고 재해석 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스스로 잠언의 참된 주석가로 생각하며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벤 시라는 모세오경, 여호수아기,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 느헤미야기, 욥기, 시편,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하까이, 말라키서을 인용 활용하였다. 또 벤 시라는 판관들(46, 11-12)과 소예언자(49,10) 열두 명에 대해 언급하였고, 시편을 다윗의 작품으로(47,9-10), 잠언을 솔로몬의 작품으로(47,14-17) 소개하였다.

 

3. 경전성

 

기원후 200년 경부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집회서의 경전성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기원후 376년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는 개인적으로 집회서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교회에서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한다. 예로니모는 팔세스티나 유다교 전승의 영향으로 집회서를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구약성경의 다른 책들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였다. 기원후 400년 초에 루피노는 아타나시오의 경전 목록을 수용하면서, 집회서는 교리교육을 위해 유용한 교회의 책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한다.

 

아우구스티노 때부터 지혜문학 작품들과 집회서에 대한 기존사고방식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기원후 393년 히포 공의회는 집회서를 솔로몬의 다섯 작품중 하나로서 그리스도교 경전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하였다. 카르타고 공의회(397년과 418)와 교황 인노텐시오 1(405)오 이 책의 경전성을 인정하였다. 1441년 피렌체 공의회와 특별히 1541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경전 목록이 확정되면서 집회서는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 지혜서, 바룩서와 함께 제2경전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VI. 구성과 내용

 

1. 구성

 

집회서의 구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으나 집회서의 내용 대부분이 사회적 삶과 윤리, 도덕적 반성들,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와 율법에 대한 내용이 일정한 흐름없이 짜여있어 구성의 틀을 잡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회는 일반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와 후반부의 구분의 범위가 약간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공통점은 지혜 찬미로 시작하는 것에 있다.

 

A. 인간의 다양한 삶 안에서의 하느님 지혜(1,1-42,14)

창조에 대한 찬가(42,15-43,33)

B. 창조(자연)와 이스라엘 역사 안에 드러난 하느님 영광과 지혜(44, 1-50, 29)

자연에서(42,15-43,33)

역사에서(44,1-50,24)

결론 (50, 25-29)

부록 (50,1-30/ 51))

첫째 부분(집회 1,1-42,33)은 대부분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혜를 다룬다. 모든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1,14)이라고 강조하는 집회서는 지혜를 얻기 위해 요구되는 현명한 처신들을 총망라한다(4,20-31). 또 지혜를 얻는 자에게 행복이 돌아갈 것이며(14,20-15,10). 그 행복은 결국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첫째 부분의 결론이다(24,1-29).

 

첫째 부분이 끝나고 둘째 부분과 둘째 부분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며, 자연계의 아름다운을 노래하면서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둘째 부분(44,1-50,29)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이 이스라엘 역사 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통해 계속됨을 이야기 한다. 인물들을 소개하는 데 있어 특이한 점은 성전과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들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대사제 시몬이 그 사실을 대변하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50, 1-2).

 

그러나 지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네 부분으로 나누는 방법도 있다.

첫째부분(1,1,-23,28): 하느님에게서 기원한 지혜의 신비에 관한 말씀

둘째부분(24,1-42,14): 창조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지혜를 찬미하는 말씀

셋째부분(42,15-43,33): 창조주 하느님의 업적에서 드러난 지혜에 관한 말씀

넷째부분(44,1-50,29): 이스라엘의 역사에서주님을 경외하는 일에 열성을 다한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지혜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여러 가지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다섯 부분으로 나누는 방법도 있다.

첫째부분(1,1-16,23): ‘지혜현명과 기타 금언

둘째부분(16,24-23,28): ‘하느님창조와 기타 금언

셋째부분(24,1-32,13): ‘지혜율법과 기타 금언

넷째부분(32, 14-42,14): ‘하느님 경외처세에 관한 말씀

다섯째부분(42,15-50,29): ‘하느님의 영광에 관한 말씀

 

2. 내용

 

집회서는 내용상 뚜렷한 구분 없이 자신의 사상과 권면을 주제별로 다양하게 모아 놓은 책이다. 그러므로 44,1-50, 24의 역사적 인물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다룬 특정 모음집을 제외하면, 내용상 반복도 많고 단락에서 일정한 흐름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결국 벤 시라가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지혜를 펼쳐 놓은 책이라서 주제를 제시하는 데에 일정한 틀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집회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지혜가 중심 주제를 이루는 단락

- ‘현인이 중심 주제를 이루는 단락

 

1) 지혜에 관한 여러 시: 지혜라는 주제가 집회서 전반에 걸쳐서 반복되어 나오는데, 특히 24장이 중심이다.

2) 창조와 하느님의 정의

3) 주님을 두려워 함

4) 가정생활, 아내와 여자, 우정

5) 경제와 재물, 정치활동, 이웃 돕기, 음식...

6) 여러 덕행

7) 말의 중요성 등 여러 가지 주제

8) 자유 의지에 관한 진술

 

집회서의 주제는 체계를 세울 수 없을 만큼 흩어져 있고 한두 주제가 복합되기도 하는 등 무척 산만하다. 그러나 집회서는 평범하면서도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다.

 

주제에 따른 접근

EX) 지혜와 현자, 주님을 두려워함, 율법, 기도, 자연과 역사, 하느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사회생활

 

<1> 주님을 경외함(2, 15-18)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주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겨 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의 법을 준수하면서 기꺼이 지혜를 찾아 나선다. 주님을 경외해야 비로소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지혜를 얻어야 주님을 경외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주님을 경외함이란 곧 율법에 대한 순종을 뜻한다.

 

<2> 여러 덕행: 인내와 절제(2,1-6)

 

헬레니즘에 의해 야기되는 유혹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인내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모세의 율법을 찬양하고 하느님 백성이 지닌 전통적 지혜의 위대함을 옹호한다. 아울러 시대의 아픔을 느끼면서 주님을 따르려 애쓰는 이들에게, 하느님께 근거한 삶의 지침과 격려의 말을 들려준다.

 

<3> 기도(28, 2-4)

 

저자는 기도가 올바른 삶의 태도와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회개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하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4> 생활의 슬기를 담은 모든 이의 책

 

듣기는 빨리하고 대답은 신중히 하여라... 영광과 치욕은 말에 있고 인간의 혀는 파멸이 될 수도 있다. 증상꾼으로 불리지 않도록 하고 네 혀로 올가미를 놓지 마라. 부끄러움이 도둑에게 닥치고 엄한 단죄가 두 혀를 지닌 자에게 떨어지리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소홀히 하지 말고 친구가 되어야지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5,11-6).

 

<5> 지혜와 율법의 만남

 

벤 시라는 하느님의 계약과 인간의 체험으로 밝혀 낼 수 있는 지혜는 연속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즉 참된 예배의 혼으로 일상생활과 주님의 계명을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삶의 자리, 생활의 진리가 결국 계명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결코 종교 때문에 덮씌워진 굴레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침임을 깨닫게 된다.

 

집회서의 저자 벤 시라는 지혜와 율법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의 상호관계를 잘 조화시켜 지혜를 종합하고 있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전히 이해하고 지켜서 스스로 율법과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4, 1-32).

 

 

VII. 전체적 개관과 가르침

 

1.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느님

 

벤 시라는 시라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귀족인 예수를 일컫는다(집회 50, 27). 그는 기원전 190년 지혜문학 가운데 가장 긴 집회서를 기록했다. 이때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의 자유과 고결함을 찾아 나서던 시대였다. 팔레스티나 지역 역시 헬레니즘의 영향을 직접 받았고 특히 교육제도에서 엘리트주의 경향을 띠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남들보다 훌륭하게 사는 것이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헬레니즘 문화가 확장되면서 대두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지혜를 다른 미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재정립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집회서의 시대적 배경은 팔레스티나에 대한 통치권이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시리아를 다스리던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가든 시기로, 팔레스티나 이집트의 지혜와 헬레니즘의 지혜, 그리고 유다의 전통적 지혜가 뒤엉켜 그야말로 지혜의 혼전과 혼돈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혼돈에 등장한 물음들은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지혜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 하느님의 율법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상의 삶이 힘겹고 어지러울 때 산다는 것, 믿는다는 것과 관련된 물음들에 휩싸여 도대체 그 답을 찾지 못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듯이 당시의 팔레스티나 지역도 그러했다.

 

집회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42, 15-50, 29)에서 세상 모든 지혜의 결론을 하느님의 영광안에서 집약시키면서,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42, 18-25). 그래서 집회서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가 사실상 모든 지혜의 근본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1,14)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을 믿거나 따르는 것을 용납될 수 없음을 천명한다. 하느님이 유일하신 분임을 깨닫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말이다(36, 5;42,21).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으로도 묘사되는데(18, 1-7; 36,22), 이 영원함 역시 하느님의 헤아릴 길 없는 업적과 권능을 통해 그분만이 유일하시다는 것을 강조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집회서의 하느님은 모든 것자체이시다. “우리가 많은 말로 이야기해도 미치지 못하니 그분은 전부이시다.’ 할 수 밖에 없다”(43, 27). 이는 구약성경이 말하는 전통적인 하느님에 대한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예레 23, 24; 시편 139,8). 하느님은 아니 계신 데 없이 곳곳에 다 계시니,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부이신하느님이다.

 

하느님의 전부’,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하다 보면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전체주의적 개념을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집회서는 전체주의적 하느님 개념을 마다한다. 하느님은 만물을 조화롭게 만드시고 그 조화 안에서 완전함을 이끌어 내신 분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집회 42,24). 인간이 비록 부질없이 허망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분이 만드신 세상 안에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간다면, 그래서 주위의 수많은 사건과 질서에 깨어 응답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맞게 살아간다면 (43,10) 참된 지혜를 얻어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집회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전부는 조화의 삶이 만들어 내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말한다. 조화의 삶을 깨닫는 것은 전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힘으로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조화로운 질서 안에 놓여 그 질서를 깨닫는 것이다. 집회서를 통해 나는 모든 것 안의 하나로서 살아가는지, 모든 것이 내 안에 수렴되고 내 뜻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삶으로 살아가지 않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2. 지혜를 추구하는 인간

 

이스라엘 현인들은 지혜가 단순히 인간 이성과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기원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지혜가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은 본래 지혜가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가 지혜의 근본이라 말하는 집회서는 참된 지혜를 구하는 자의 도리로서 하느님께 대한 찬미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최선을 다해 그분을 높이 받들 것을 요구한다(집회 43,30).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하느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인간은 그저 그분의 뜻대로 처신하는 기계적인 존재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전권은 인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회서는 하느님의 전권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15, 14).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 우리의 죄와 잘못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생명과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 역시 우리 뜻에 달려 있다(15, 11-17).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과 악을 보여주시면서(17,7) 의로움을 찾기를 바라신다(27, 8). 여기서 우리는 신명기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신명 30, 15). 하느님이 내놓은 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지혜이다.

 

집회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율법에 대한 충실성으로 소개한다. 욥기와 코헬렛에서 논란이 된 착한 이에게 상, 악한 이에게 벌이라는 보상신학이 집회서에 다시 등장한다. 주님과 그분의 뜻에 충실한 자는 복을 받고(1,13), 온갖 상급을 잃지 않으며(2,8),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28,6;37,26;39,9-11). 하느님은 이러한 인간의 충실함에 대한 상을 직접 보증해 주신다(11,26;12,6;27,24). 집회서는 상선벌악에 대한 전통적인 사상을 다시 제시하면서 지혜로운 인간은 선을 지향하며 선 안에서 하느님의 복을 얻어 누리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17,8-10; 39,14-15.35; 43,30; 51,1.12.22). 인간이 악한 일을 접어들어 지혜를 멀리하게 될 때 인간이 해야 할 일 역시 하느님께 애원하며 용서를 비는 것이고(21,1), 죄악으로 기울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22,27-23,6; 28,2-4). 지혜를 추구하는 인간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를 집회서는 주님께 대한 경외(1,11-12), 그리고 율법에 충실함으로 표현한다(24,23-25).

쉽지 않은 인생, 수많은 가치관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지혜를 추구한다면, 그 추구의 유일한 길은 하느님뿐이다(24,24).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죄악과 위기의 상황 앞에서 이스라엘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헬레니즘의 거대한 폭풍 앞에서 시대의 한 현자이며 율법 학자였던 벤 시라 또한 위기 앞에서 우리가 서 있을 자리를 알려준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기도와 묵상의 주제를 집회서와 함께 묵상하며 매일 생명의 물을 마실 때, 우리의 삶도 변화되고 우리의 미래는 하느님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성경 읽기 안내 구약2, 성서와 함께, PP. 59.

     시서와 지혜서, 박병규, 바오로 딸, PP.231-273.

     시서와 지혜서, 김정훈, 바오로 딸, PP.2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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