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센트의 향기를 성경 안에서

레위기의「희년」의 정신 안에 담겨진 빈센트 영성

마리아 아나빔 2015. 10. 5. 14:43

 

 

레위기의희년의 정신 안에 담겨진 빈센트 영성

 

 

우리는 수도회 진출 50주년과 봉헌생활의 해를 하느님께 선물로 받았다. 우리 공동체와 자비의 수녀들에게 있어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크신 은총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온 몸과 마음으로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시간이 우리 안에 희년의 풍요로움을 더하고, 새로운 도약과 자비의 축제적 삶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레위기의 희년의 정신 안에 담겨진 빈센트 영성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

 

레위기에 나타나는 희년’(레위 25,9-10)은 인간을 위하여 참 인간의 가치와 존재론적 삶을 위한 것이다. 이 삶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하느님 안에 둔 인간이기에 희년의 삶은 하느님을 목표로 하고 그분 안에서 완성된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 거룩한 삶에 있으며 이 초대에 그 누구도 제외됨이 없다. 더 나아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을 비롯한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우주의 피조물로 확장되고 인간의 품위와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로 이어진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희년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루카 4,18-19) 안에서 실현되고 완성된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하느님 나라(Basileia)는 바로 신약의 희년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Anawim)에게 우선적으로 선포된 희년은 죄로 부터의 해방과 억압된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 자녀됨과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희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마련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이라는 두 개의 선물이 만들어 내는 기쁨의 축제이다.

 

구약의 희년은 만들어졌을 뿐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반면 신약의 희년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의 불행과 비천함을 함께 나누시고, 그들의 품위를 되찾아주신다. 이로써 사람들의 매일의 삶이 축제이고 희년의 연속이다. 이 희년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실천한 모든 이들에 의해서 실현되고 새롭게 선포된다. 성 빈센트는 이 대열에 섰던 사람이다. 그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거침없이 찾아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준 새로운 계명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나눈다. 가난한 이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것, 그들을 주님으로 섬김으로써 모두가 함께 구원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하느님 나라가 그에게 희년이었다(마태 25, 40).

 

자유와 해방, 함께 나누는 삶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보호법이 있었다(신명 24,17-22). 이 법은 탈출 23, 10-12에 언급되어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가 후일 신명기의 여러 규정에 강조된다. 여기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내용이 매우 강하게 삽입된다. 또 레위기 25, 6-7절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과 짐승들에 대한 배려까지도 언급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보호법은 자국민의 가난한 이들(고아와 과부들), 거류민(외국인)에 대한 보살핌 그리고 종의 해방이다(신명 15, 12-18). ‘종의 해방에 대한 규정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 백성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권리의 우선권을 위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부 권리를 중단시키는 규정이다. 이로써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백성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도록 돕는다(신명 15, 4).

 

가난한 이들에 대한 후한 마음과 배려는 하느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고(신명 14, 28-29)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마련하신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보호법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을 지닌 모든 인간에게 그분의 자녀로서의 훼손된 품위를 돌려주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나 상황으로 인해 묶여있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이 원죄 이전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원자유(Original Free)를 되찾게 해주는 일이다. 또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함께 빵을 떼고 나누는(사도 2,42) 친교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있다. 이러할 때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신다(신명 14,29).

 

성 빈센트가 살았던 그리스도의 희년의 삶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임계적 삶(liminal life)이다. 틈새의 사람들의 얼룩진 삶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삶이다. 이 삶은 봉쇄와 제도와 부요한 사람들 안에서가 아닌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적 가치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해진다. 또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을 아우르고 연대하며 포용력 있는 섬김의 봉사(Diconia)로 실현된다. 나눔이 있는 공동체의 행위 그 자체가 희년이고 축제의 참 정신을 담고 있듯이, 성 빈센트는 시골이나 도시 빈민들, 자신의 삶을 보장할 자기 권리를 가지지 못한 사회의 변두리 계층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희년의 삶을 선사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선포하고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들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돕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주신 희년은 소외된 이들이 배부르게 될 때 비로소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 쉼과 거룩한 삶

 

희년의 정신은 안식년의 근본정신을 반영한다. 안식년은 인간과 땅의 휴식이다(레위 25, 4). 땅의 휴식에서 나오는 소출은 가난한 이들, 들짐승과 집짐승들의 양식과 몫이다. 이는 땅과 짐승과 사람이 모두 을 매개로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이 세상의 생태적 균형을 찾으며 본래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에 있다. 안식년의 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숨을 돌림으로 인간과 자연 모두가 지친 생명력을 다시 갖게 한다. 또 저 마다 제 소유지와 권리를 되찾고 자기 삶의 자리(Sitzen im Leben)로 돌아간다(레위 25,10). 그리하여 모든 것이 하느님께 속한 것임에 대한 자신의 신원을 깊이 깨닫게 된다(시편 24,1).

 

돌아가는 일은 또한 인간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새롭게 살기를 요청한다. 이 새 출발은 하느님의 거룩함으로의 초대로 귀결된다(루카 6,48). 사실 레위기 전체의 근본정신은 하느님의 현존을 모신 사람들의 삶이 거룩한것임에 대한 가르침이고 그 삶으로의 길잡이다. 하느님의 이 초대와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심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레위 25, 20-22).

 

성 빈센트가 선포한 희년의 정신에서 부유한 이들의 휴식과 쉼 안에서 나온 소출이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청지기의 삶임을 확인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하고 그들의 외침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 이에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주님의 가난한 이들에게 정감적인 사랑(affective love)과 실효적인 사랑(effective love)으로 응답한다. 그의 삶은 소유와 탐욕과 같은 부의 축적이 아닌 소박하고 겸손한 삶의 가치와 생활양식의 선택이며,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악에 대해 하느님의 정의를 향한 열정으로 모두가 함께 살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삶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자녀로서의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마련해주고 하느님 현존 속에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생애 안에서 이 삶은 끝임 없는 회심과 거룩한 삶에로의 열정,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와 창조적 사랑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오면서

 

희년은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구체화된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시고 억압받은 이들을 자유롭게 하신 그분의 삶과 활동 안에서 명확하게 선포된다. 성 빈센트는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희년의 정신을 자신의 삶 속에서 재현한 사람이다. 희년 정신의 중심부에 차지하고 있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나눔의 삶에 가난한 이들이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인도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선포된 희년 역시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해방자 이신 하느님을 우리 삶 안에 장엄하게 고백하고 물질주의와 자본주의로 가득한 세상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생명문화를 만들어가고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며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를 가져오는 일에 하느님의 자비로 헌신하는 삶에 있다. 이러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성 빈센트가 살았던 희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불리움을 받은 자비의 수녀들에 의해 계속 선포되어지고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