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입문
I. 입문
1. 책의 이름
모두 5장 다섯 개의 노래로 되어 있는 이 책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책의 첫 낱말(1,1; 2,1;4,1)에 따라 ‘에카’라는 이름을 가진다. 하지만 이 책은 전에 ‘키노트’(애가들, 만가들)로 칭해졌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유다인들의 괴로운 감정을 표현한 첫 단어를 따서 ‘에카(‘아’/ ‘어떻게’ 라는 뜻)‘ 라고 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트레노이(애가)‘라고 불렀고, 라틴어 성경에서는 같은 뜻을 ’라멘타시오네스(Lamentationes)'가 사용되었다. 그 후 그리스어 이름을 라틴어로 음역한 ‘트레니(Threni)'가 전통적인 이름으로 널리 쓰였다.
중요한 필사본들은 거기에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을 덧붙인다. 다른 번역본들에는 그에 상응하는 “예레미야 애가”라는 표제어가 있다. 그래서 칠십인 역본1,1의 본문 앞에 상황 진술이 나오는데, 이 진술에 따르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가는 것을 보고 이 애가를 불렀다고 한다.
현대의 번역본들도 이 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여, 칠십인역이나 불가타에서처럼, 이 소잭자를 예언자 예레미야의 책 뒤에 배열하고 “예레미야 애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2. 저자
유다 전승에서는 예레미야를 저자로 여긴다(2역대 35,25). 애가를 ‘예레미야 애가’라고도 부르거나 애가를 예레미야서 다음에 놓은 것은 이러한 전승의 영향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난세에 살았던 그가 이처럼 잘 정리되고 다음어진 문제의 저사를 남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또 다섯 개의 노래가 그 형식과 기조가 같지 않아 한 사람(예레미야)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본문의 내용으로 볼 경우, 팔레스티나-예루살렘에서 애가가 저술되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2,10;4,22;5,4;8,18). 바빌론에는 에제키엘의 말을 듣는 일정한 청중이 있었기 때문에(에제 8,1) 그의 존재가 무시될 수 없었고, 반면에 예레미야가 이집트로 도피하는 무리에 의하여 끌려감으로써(예레 43,6) 팔레스티나에는 이제 예언자가 더 이상 없다는 또는 예언자가 더 이상 주님에게서 환시를 받지 못한다는 말(2,9)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 자신이 이 말을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3. 시대배경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유다인들은 매년 아브 달(양력 7-8월) 제9일(성전 파괴 기념일)에 애가를 봉독한다. 그러면서 기원후 70년에 있었던 두 번째 성전 파괴도 함께 기념한다.
4. 신학적 의미
저자는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심판예고)을 전했지만 백성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거짓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14,13-16). 이 노래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지배적인 주제는 죄의 고백과 하느님께서 심판을 승인하셨다는 사실, 이러한 탄식 속에서도 하느님 자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와 관련해서, 첫째와 둘째, 그리고 넷째 애가에 ‘정치적 조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 노래들은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의 형식으로 시온을 한 여인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형식 속에 성전과 수도의 파괴, 그리고 국가의 멸망이라는 정치적 내용이 전개된다. 그러니 이 ‘정치적’ 노래들은 이른바 세속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기도로 나아간다.
다섯째 노래는 시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공동탄원 기도유형에 속한다. 반면에 한 개인의 노래로 여겨지는 셋째 애가에는 한 남자가 나오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고통 받는 예레미야를 연상시킨다. 또한 자기 나라의 고난을 고스란히 몸으로 나타내는 예언자의 특징들을 이용함으로써, 예언자를 통하여 백성 전체를 묘사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네 개의 노래들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으로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노래가 다른 네 개의 국가적 공동 애가들 가운데 자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II. 내용
다섯 개의 노래가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애가 : 폐허가 된 시온
둘째 애가 : 주님의 진노의 날
셋째 애가 : 애절한 탄식
넷째 애가 : 파괴된 도성
다섯째 애가 : 백성의 기도
1. 예루살렘의 참담함(1,1-22)
원수들의 손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참혹하게 망가진 예루살렘, 위로하는 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원수들의 조롱감이 된 예루살렘을 두고 애곡한다.
2. 주님의 진노(2,1-22)
예루살렘이 비천한 신세가 된 것은 주님께서 벼르시던 징벌이었음을 애절하게 노래한다. 임금, 신하, 사제, 처녀와 젖먹이까지 버려진 처지에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친다.
3. 고통 중에 품는 희망(3,1-66)
자신들이 주님의 뜻을 저버려 하느님의 징벌을 받은 아픔과 슬픔을 토로한다. 동시에 주님의 자애와 신의를 회고하면서,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리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노래한다.
4. 죄의 고백(4, 1-22)
예루살렘의 함락과 비참함은 거짓 예언자와 사제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죄와 외세에 의존해서
그 고통을 벗어나려 했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깨닫고 고백한다.
5.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길 탄원(5,1-22)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게 된 처참한 상황을 노래하며,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고 주님께 탄원하다.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것이 삶이며 구원이라고 고백한다.
III. 가르침
애가는 예루살렘이 불타고 성전이 파괴되어 극심한 충격을 받은 유다인들에게 재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여, 하느님의 참뜻이 무엇이지 일깨우고자 한다. 하느님의 참뜻이 무엇인지 일깨우고자 한다. 이로써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되돌아가 주님의 지속적인 권능과 정의, 자비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도록 이끈다. 이스라엘의 재난이 주님의 진노(2,3)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주님의 신의와 자비가 그들의 희망이라고 노래한다.
다섯 편의 애가는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 실제의 삶을 유일하게 부여해 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간구드릴 때 하느님께서는 외적인 구원 뿐 아니라 내적인 구원까지도 약속하신다는 사실은,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구세주요 구속자로 고백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증명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께 순종한다는 표지로 고난을 감수해야하고, 외적으로 볼 때 결국 죽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서는 그의 고난을 슬퍼하며 진정한 관심을 갖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어야 한다.
인간이 자기 죄를 하느님 앞에 내놓고 제한적이나마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질 때, 비로소 인간에게 이런 진실과 실재의 문이 열린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기 삶에 책임을 질 때만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운명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유에서 자기를 지탱해 주는 하느님께 삶의 근거를 둘 수 있다. 또 그는 미래에 이루어질 시간의 완성을 미리 맛봄으로써 사랑 안에서 온 인류와 하나 됨을 알게 된다. 죄와 운명, 인간의 죄와 하느님 치유 사이의 섭리적인 연관성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성경읽기 안내 구약 2, 성서와 함께, 2007, pp.85-88.
예언서, 성서와 함께, 2007, pp.124-127.